본편 3 / 과거 1-2 : 보름달이 뜨는 , 그대 보러 와요

 

 

 

 

 그는 여전했다. 웃는 얼굴, 다정한 낯빛. 무언가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사는 여전히 다정했고 말 한 마디 없이 떠났던 것에 대해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돌아와주어서 고맙다는 얼굴, 조심스레 다가오는 손길에 고맙기에 앞서 그의 진짜 감정을 알 수 없어 두려워졌다. 조금의 두려움조차도 엄청난 어둠처럼 자신을 감싼다. 어쩌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조그만 생각에도 그녀를 낭떠러지로 내몰았다. 사사가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상냥함과 예전의 그 감정을 되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을 주고 싶었지만 받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확신이 들지 않는 상대에게 부담조차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의 태도라고 여겼다. 하지만 뜯어고칠 생각은 없어 그대로 놔둔다. 한 번 입을 열면 그녀는 그에게 사랑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를 흔들고 싶지 않았다. 감정에 흔들려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 혼자면 된다.

 그러니…… 비록 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이 말을 외우는 것은 그녀에게 주문이 되었다. 비록 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괜찮다는, 꿋꿋함을 가장한 슬픔. 감정이 회오리치고 자신을 짓눌렀다.

 

“송하 씨는 마음이 많이 아픈 상태입니다. 이 명칭은 많이 들어보셨을 거에요. 우울증, 송하 씨는 우울증입니다.”

 

 엄숙하게 내리는 선고에 그녀는 칼에라도 찔린 듯 있을 리 없는 통증을 느꼈다.

 

“사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병입니다. 괜찮아요, 송하 씨가 이상해서 걸린 병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음이 아플 수 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요, 송하 씨만 괜찮으시다면 상담 치료를 진행하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오셔서 한 시간 반 정도 송하 씨와 제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어때요, 어렵지 않죠?”
“저, 저는…… 글쎄요.”

 

 아까까지만 해도 무심해 보이던 눈길이 어느새 환자를 보는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사람 앞에서 자신은 환자로 취급된다는 것을 깨닫자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애인 분도 송하 씨가 아프지 않길 바랄 거에요.”

 

 사사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사사를 생각했다. 큰 날개를 움츠린 채 곁에 앉은 사람과 닿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와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머릿속에 퍼진다. 아프지 않으면, 그래서 사사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차근차근 다가가봐도 괜찮지 않을까.

 

“……노력해보겠습니다.”

 

 그가 활짝 웃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상담에 응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올 때마다 불안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까만 눈동자로 저를 쳐다보며 괜찮아, 송하, 하고 웃는 얼굴. 곁에서 얌전히 있는 하얀 손을 잡고 싶어 손을 뻗다가 슬그머니 숨겼다. 송하 씨, 들어오세요, 하고 이름이 불리자 그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일어섰다. 상담은 그 어떤 임무보다 힘들었다. 항상 감정과 생각을 숨기며 임무를 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말하라는 요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사가 송하를 보며 눈을 마주쳤다. 다녀와, 하고 손을 흔드는 모습. 송하는 그런 사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불안하지만 상담사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얼마든지 편히 앉으시라고 상담사가 권했지만 뻣뻣한 자세를 유지한 채 이것이 편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정말 그녀는 그런 자세가 편했다. 쉽게 풀어져 흐물거리는 자세는 불편할 뿐더러 몸에 도움도 되지 않는다. 흐트러진 것은 모두 나쁘다.

 

“마음은 누구나 아플 수 있어요. 다만 아픈 것의 이유를 찾으려면 원인을 살펴봐야 되겠죠? 송하 씨의 기억을 되짚어볼 겁니다. 일 년 전에 무엇을 하셨는지 함께 생각해볼까요?”
“일 년 전…….”

 

 기억이 새하얀 도화지 위에 새겨진 그림이라면 먹물이 그 위를 뒤덮은 듯한 기분이었다. 먹물을 잔뜩 묻힌 채 어리둥절해있는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무슨 일이 발단이 되어서 모든 의욕을 잃고 주저앉아 있다고 추측해보지만 추측조차도 힘들 정도로 기운이 빠져 있다. 사실은 이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지만 역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마지막 남은 기운을 힘겹게 끌어올려볼 뿐이다.

 

“송하도 메두사나 오르카처럼 고양이는 별로야?”
“집에 있으니까 책임져야 할 생명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가늘게 뜬 노란 눈, 햇살에 반짝이는 흰 머리카락, 그 자체가 고양이일 것이다.

 

“기억하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신 걸 보니, 이때가 송하 씨에게 그렇게 나빴던 기억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다른 날을 살펴볼게요.”

 

 상담사가 기억해내길 요구하는 시간은 점점 현재로 가까워진다. 그녀 자신 속의 건강하고 흔들림 없던 모습은 천천히 흐트러져 지금의 모습과 비슷해지고 있었다. 점점 감정에 휘둘리고 불안해하는, 상담사가 보고 있는 환자의 모습. 기억도 드문드문, 구멍이 뚫리는 부분이 많아지고 상담사의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라는 대답을 반복할 무렵 그녀의 기억은 꽉 막히고 마는 부분에 도달한다. 이때다, 싶어 상담사가 몸을 내민다.

 

 그날은 날이 유독 따뜻했던 가을이었다. 유독 새파란 하늘 아래 아무 겁 없이 길을 걷고 있었고, 걸었는데, 걷다가, 걷고 나서…….

 

“……그때 당신은 누군가를 만났나요?”

 

 움찔, 치솟는 송하의 어깨를 보며 상담사는 흔들리는 머리카락이 초록색 파도 같다고 여겼다. 그녀는 입을 꽉 다물었다. 꽉 다문 입과 함께 급하게 흔들리는 고개. 상담사가 그 뜻을 알아차릴 때쯤에 그녀는 의자를 뒤로 빼고 일어난다. 드르륵, 하고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났다.

 

“저, 저는…… 그만두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이건 그만두겠습니다.”
“네? 송하 씨, 잠깐……. 나가시면 안 돼요!”

 

 잡기도 전에 그녀는 방문을 찾아 나가버렸다. 한 사람이 나간 방이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상담사가 그녀를 쫓아 방을 나왔다. 그녀는 상담을 진행하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녀를 항상 함께 다니는 남자가 진정시켜주었다. 다소 말이 없었지만 그는 침착하게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아예 병원을 나서는 그녀를 급하게 따라나간다. 그는 마치 그녀의 안정제 같다고 생각하며 상담사가 갑작스럽게 비어버린 상담 시간을 홀로 보냈다. 어쩌면 그는 그녀를 안정을 취하게 만들고 당당한 모습으로 변하게 할 유일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약을 받았다. 이것은 수면제고, 이것이 항우울제라며 짚어준 알약들은 색이 전부 흰색에 가까워서 뭐가 뭔지 구분을 하려고 해도 힘들다. 어차피 요즘에는 무엇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약의 색들을 익히는 것도 어차피 할 수 없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집에 돌아와 약들을 쳐다보다 오늘 먹어야 할 부분을 뜯었다. 다시 쳐다보며 분간을 해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역시나 결과는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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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to find you


뉴트x제이콥


 






 뉴욕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은 뒤 뉴트 스캐맨더가 런던으로 돌아온 것은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시점이었다. 뉴욕에서 티나가 보낸 첫 번째 편지를 받아본 후 3일이된 날이기도 했다. 마법부에서 조그만 자리를 차지한 채 책을 집필하다가도 편지 안의 내용이 머릿속을흐트러뜨리고 펜을 멈추게 만들었다. 같은 부분을 다섯 번째 되풀이해서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완전히펜을 놓아버렸다. 괜한 양피지 낭비 말자. 그 대신 뉴트는책상에 엎드렸다. 햇살과도 같은 빛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책상에 닿는다. 이미 여러 번이나 편지를 읽어보았기 때문에 굳이 편지를 들춰보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어렵지 않게 되짚어 볼수 있었다. 수많은 내용들을 제쳐두고 오직 한 부분만 둥둥 떠오른다.……제이콥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퀴니가 얘기해주었는데, 빵집을 열었다더군요!





 머글, 그걸 미국에서 뭐라고 불렀지? 뭐라더라, 머글이 아닌 노ㅁ…… 노마지, 그래, 노마지라고 불렀지. 제이콥코왈스키, 그는 이제 자신에게 보통의 노마지가 아니라 마음 한 켠을 쿡 쑤시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는 것으로 기억을 잃게 만들어야 했던 그 사람.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리는 것을 보니 이런 것을 두고 일종의 양심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종류의 것이겠지만. 둥실둥실 떠오르는 사람 좋은 웃음과 포근한 체격에 뉴트는 몇 번이고 책 작업을 지체해야 했다. 계속해서 뉴욕의 모습이 생각나고 그곳에서 맡았던 매캐한 연기조차도 반가울 것 같았다. 하룻밤과 낮이 지나고 뉴트는 결심을 했다. 가자, 뉴욕으로. 티나와 퀴니, 그리고두고 온 모든 것들이 그를 지독한 향수병에 걸리게 만들기 전에. 늘 입는 푸른 코트에 회색과 노란색이섞인 목도리를 둘렀다. 스캐맨더, 하고 쏘아보는 상사의 눈빛도애써 모른 척 하고 뉴욕행 티켓을 끊었다. 그는 다시금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배 멀미에 아찔해 할 사이도 없이 탈출하려는 니플러며 두걸을 말리느라 애를 썼다. 안 돼, 예전에도 소동이 있었잖아,조금만 참자, 하고 달래는 것도 일이라면 일이다. 뉴욕으로도착하자마자 뉴트가 향한 곳은 제이콥의 빵집이 있는 곳이었다. 깜짝 방문이라 티나와 퀴니의 업무 종료시간까지 기다리려는 계획이기도 했지만 제이콥이 가장 많이 생각나고,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티나의 편지에 따르면 이 부근 어디쯤이었던 것 같은데……. 다물었던입이 살짝 벌어졌다. 아담한 빵집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제이콥의 모습에 그는 생각조차 길을 잃고 허둥댄다. 멀리서 보겠다는 생각은 어느새 저편으로 밀어두고 몸이 먼저 움직여 어느새 빵집 안으로 들어섰다. 빵집 안을 가득 채운 빵들의 모양을 보고 그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제이콥이자신과 함께 돌봤던 동물들이 빵을 통해 새로 태어난 듯했다. 기억을 잃은 줄 알았는데 무슨 조화인지그러지 않은 듯했다. 어느새 두세 발자국 앞에 서 있는 제이콥이 보였다. 뉴트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제이콥을 보았다. 그가 인사를 하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하지?





 한층 가까워진 제이콥의 모습에 그는 숨을 삼킨다. 다음 순간제이콥이 유쾌하게 외쳤다. 그 목소리를 뉴트는 언제나 듣기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처럼 원망스러웠던 적이없었다.





“우리 빵집의 빵이가장 맛있고 신선합니다! 젊은 청년, 청년도 하나 맛보면좋아하게 될 거에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이, 제이콥은 지극히 손님을 맞이하는눈빛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뉴트는 그를 붙잡았다. 그래도 혹시나, 설마.





“저, 저기!”


“네?”





 그가 뒤돌아 섰다가 등을 돌린다. 눈을 마주치면 뭔가를 기억해낼지도몰라.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뉴트가 제이콥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그의 반응은 여전하다. 뭐 필요한 것이라도 있느냐는 눈빛은 분명 장난을 치는 것도, 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도 아니다. 빵 하나를 가리키며 뉴트가 외쳤다.





“이 빵, 이런 모양은 어디서 생각해내신 거죠?”


“글쎄요, 그냥 생각하면 나와서요. 그 모양이 마음에 드나요? 맛도 좋답니다!”


“저는, 저는…….”


“……청년?”





 동물들은 기억하는데, 왜 나만.당신의 기억 속에서 어째서 나만 쏙 빠져 나왔는지. 동물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 기억 속에흐릿하게나마 나도 잊지 말아주지. 미소 짓고 있던 제이콥이 다소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서야 뉴트는 자신이울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이콥은 뉴트를 달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토닥여주는 손길은 여전히 따뜻해서 뉴트는 차라리 손길마저도 차갑기를 바랬다.





 울음을 삼키며 뉴트가 빵집을 나왔을 때는 손에 빵 봉지를 들고 있었다. 움켜쥐듯이잡은 봉지에 손자국이 남는다. 좋은 냄새가 나는 빵 봉지를 열어보면 니플러 모양의 빵도 있고, 애럼펀트 모양의 빵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자신의 모습도, 티나도, 퀴니도 없다. 비틀거리며벤치를 찾아 앉아 곁에 슈트 케이스와 빵 봉지를 내려놓았다. 축 늘어진 모습으로 뉴트가 빵 하나를 집어들다 내려놓았다. 목이 메어 빵이 넘어갈 리가 없다. 다시눈물이 날 것 같아 뉴트가 얼굴을 감쌌다. 어느새 가방 안에서 빠져 나온 니플러가 반짝이는 것을 향해달려가려다가 얼굴을 감싸고 있는 뉴트를 쳐다보며 불안한 표정을 하다가 뉴트의 품 안을 파고든다.





 여전히 빵 냄새는 향긋했지만, 제이콥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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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팁버키GS - About winter

시점: 윈터 솔져 이후~시빌워 이전

 

About winter

 

 그녀는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다시 살아난 기억에 그녀는 기뻐하며 웃을 틈도 없었다. 겨우 스티브를 만났을 때 그녀 자신은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가차 없이 너는 내 미션이라며 공격했었다. 기억에 아파하며 정처 없이 걸어 다닌 이곳, 여기가 어디지? 하고 정신을 차려보면 현란한 네온사인이 밤낮 가리지 않고 반짝거린다. 아프지도 않을 강철이 아픈 것 같아 얼굴을 찡그렸다. 누군가가 그랬다, 있지도 않은 곳이 아프다면 환상통을 의심해보라고. 차분하게 돌리려 노력하는 시선을 거리 곳곳이 잡아 끈다. 스티브를 닮은 파란 눈을 찾은 것 같아 그녀는 잠시 멈칫하고 만다. 그리고 그가 맞음을 알았을 때 윤기 잃은 갈색 머리카락은 급하게 돌리는 고갯짓에 의해 흔들리다 가라앉았다. 그는 누구인지 모를 단단한 몸을 가진 남자와 카페 안으로 들어선다. 발걸음 소리를 한껏 죽여가며 버키가 그 뒤를 따랐다.


 무언가 주문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종업원이 내어준 메뉴판을 들여다봐도 뭐가 뭔지 알 턱이 없어 스티브의 등만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들 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종업원이 직접 다가오기까지 했다.


“손님? 주문을 하셔야죠.”
“커…… 아무거나 주세요.”
“아무거나, 라고 주문을 받을 수는 없어서요.”


 직원의 난처한 표정을 모른 척 할 수 없어 메뉴판을 대충 살펴보지만 읽어봐도 모르겠다. 손님? 눈치를 주는 얼굴에 버키가 아무거나 가리키며 이것 주세요, 하고 중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얀 크림이 올라간 조그만 커피 잔이 나왔다. 아마도 크림이 올라간 무언가를 시킨 모양이겠지. 홀짝거리며 마시는 시늉만 여러 번 했다. 그 와중에도 스티브를 향한 눈길은 여전해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박아두었다. 입은 셔츠에 가득한 체크무늬 모양이며, 짧게 깎은 머리, 앞에서 웃으며 이게 바로 21세기 아메리칸 스타일이야, 하고 웃어대는 친구.


 언뜻 돌리는 얼굴에 시선을 마주할 뻔 했다. 하얀 얼굴에 자리한 빨려들 듯한 눈은 여전한 푸른 색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가 우리의 마지막 만남을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여전히 그때의 반즈 병장이고 몸에 꼭 맞춰 입은 군복을 입은 채 네 앞에 나타날 수 있다면……. 지금과 그때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그에게는 요즘 세상의 친구가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티브는 여전히 예전과 다를 것 없는 웃음을 지으며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웃음을 따라 그녀도 웃을 뻔 했다. 테이블에 돈을 내려놓은 후 버키가 일어섰다.


 자, 이제는 루마니아로 떠날 시간이야, 버키 반즈.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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