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웅은 싫어 사사GS송하 - 안녕, 휴일

 

 

 

 

 

안녕, 휴일

 

 

 

 

 몸을 일으키니 곁에서는 송하가 반쯤 눈을 뜬 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니 온 세상이 초록색이다. 이대로 송하를 쳐다보는 것도 좋지만 배가 고파 결국은 일어섰다. 방문을 나서 부엌을 찾았다. 냉장고를 뒤적이다 요거트를 하나, 찬장을 살피다 숟가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런 짓을 하면 송하가 안 좋아할 텐데, 싶었지만 혼을 내더라도 오늘만큼은 봐줬으면 좋겠다. 침대 시트 위에 늘어진 머리카락이 불규칙적인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밟지 않게 사사가 시트를 조심조심 밟았다. 사박사박, 눈 위를 걷는 것도 아닌데 발을 옮기는 소리가 매끄럽다.


“침대 위에서는 뭘 먹지 말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만.”
“오늘만.”
“…….”


 방긋거리며 웃으니 새초롬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저 표정은 허락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며 고마워, 하고 중얼거렸다. 냉장고에 딸기 맛이 하나밖에 없어 송하에게 양보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블루베리 맛 요거트를 골라왔는데 예상 외로 이것도 꽤 맛이 좋다. 먹으며 송하를 힐끔거리니 뭐라 말을 하려는지 붉은 입술이 살며시 벌어졌다 닫혔다. 뭘 하려는지는 몰라도 송하가 침대를 벗어나길래 그녀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사가 그녀를 위해 남겨둔 딸기 요거트와 은색 숟가락을 가져온 송하가 와이셔츠 차림으로 침대에 주저 앉는다. 평소에는 침대 위에서 뭘 먹는 것을 질색하더니 오늘은 예외인 건지 참 잘도 먹는다. 숟갈을 놀리는 손짓도, 먹기 위해 벌리는 입술도 예쁘다. 이것도 저것도 다 이쁘다는 생각에 요거트 통을 쥐고 있던 하얀 손이 시트 위를 향했다. 그 위에 놓여진 요거트가 아슬아슬, 넘어질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넘어지지 않는다. 사사가 그만 먹든 말든, 송하는 제 것을 먹는 것에만 집중한다. 플라스틱 통을 긁는 숟가락 소리가 요란했다. 송하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음이다. 거의 다 먹어가는 것이 보여 살며시 손을 잡아 내렸다. 그녀는 무슨 할 말 있느냐는 듯이 갈매빛 눈을 동그랗게 뜬다. 늘 예쁘다고 생각했던 속눈썹 긴 밤빛 눈이 가까이 다가온다. 입을 맞추며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숨이 막혔다. 송하가 요거트 통을 쥔 채 침대 머리맡을 더듬거렸다. 도대체가 한 번 시작하면 다른 걸 할 틈을 안 준다. 요거트 통은 손짐작으로 겨우 대충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두었다. 요거트를 치우는 그 짧은 시간을 못 참고 탁자 위를 더듬는 손마저 잡으려는 걸 제지하며 어깨를 때렸다. 맞댄 입술에서는 달달한 냄새가 난다. 아, 블루베리 맛.


 침대 위에 올려놓은 나머지 한 손이 요거트 통을 건드려 톡, 넘어진다. 눈으로 그것을 확인한 송하가 입술을 떼며 이런 걸 여기에 놔두면 어떡하냐고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사사 본인도 아차 싶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 얌전히 사과하고 뒷처리는 제가 하겠다며 달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불 빨래해야 된다 그랬잖아, 이따 하지 뭐! 하고 발랄하게 외치는 목소리에 하는 김에 아예 혼자 해버리라고 송하가 반격한다. 괜한 심술, 부루퉁한 얼굴이 귀엽다. 혼자 한다고 해도 세탁기에 넣으면 끝이다. 군말 없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응? 볼에 가볍게 뽀뽀했다.


 한 순간도 주머니에 없으면 못 살 것만 같은 휴대폰 전원을 끄는 것이 보였다. 평소에는 그렇게 손에서 놓지를 않더니 오늘은 웬 일인가 싶다. 그 눈빛을 알아본 사사가 생글거렸다. 원래 휴대폰은 송하랑 연락하려고 있는 건데, 송하가 곁에 있으니까 이건 오늘 필요가 없지. 좋을대로 하십시오, 하고서 송하는 침대를 가볍게 벗어났다. 긴 거울 앞에 가서 서더니 옆에 있는 조그만 바구니에서 고데기를 꺼내 들었다. 여러 번 해본 듯 송하는 머리카락을 능숙하게 고데기로 잡아 내리고 있었다. 원래도 곱슬거렸지만 더욱 곱슬기가 살아난다. 사사가 근데, 하고 말을 시작한다.


“그거, 고데기 때무니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풍성한 웨이브의 녹색 머리카락. 송하가 문득 발끈해 외쳤다. 원래 천연 파마이고, 고데기는 그런 머리를 보다 풍성하게 해주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머리카락의 천연 곱슬 여부를 궁금해하는 사사가 얄미웠다.


“천연입니다!”


 획 돌아보는 눈빛, 매섭기도 해라. 아무래도 화제를 잘못 잡은 것 같다. 아 그래, 그런 거 같았어, 하고 달래듯 말을 하며 사사가 쪼르르 다가와 뒤에 섰다. 초록색 정수리가 보였다. 송하가 어느 정도 크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확한 키는 모른다. 그저 키가 얼마겠거니, 어림짐작해본 적은 있었다. 허리를 끌어안고 턱으로 아프지 않게 머리를 콕콕 찍었다. 짜증내며 허리를 비틀어 빠져나오려는 몸짓에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하고 급히 행동을 멈췄다.

Posted by 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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